환상통 

"... 그래서 단지 저 혼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싫어지는 마음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항상 '환상통'이라고 부르시지 않습니까?"

"예, 맞습니다. 지금 당장 당면한 문제여서 마음 쓰이는 거라면 모르지만, 계속 미래를 생각하는 습관이라고 할지, 그 일련의 행동 양식이 있지도 않은 문제를 만들고, 그게 저를 계속 아프게 하며 침잠시킵니다. 그러다가 점점 더 심해지면 갑자기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정신이 솟구쳐 오릅니다."

"잠깐만요, 생각하지 않는 것은 어떠신가요?"

"습관이라 쉽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샤워 부스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는 그 순간에 쉽게 상념에 젖습니다. 그 상념의 귀결은 대부분 '왜 이렇게 살까?' 입니다. 비관적으로 해석하실 수 있지만, 그건 아닙니다. 좀 더 순화하여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환상통 

단순한 잡념에서 귀결로 이어지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단순한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귀결이 다른 상념의 파생을 낳습니다. '할 수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또 이렇게 침잠하는구나', '지난번 면접을 너무 죽 쑨 것이 원인일까?'라던지, 좀 더 보편적으로 나아가 '나는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가?'까지 광범위하게 제 뇌가 저에게 속삭이는 이런 질문들은 제가 조절할 수 없는 불수의근과도 같은 느낌이라 이러한 질문들이 제게 닥쳐오면 저는 무기력하게 일방적으로 걱정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걱정을 당한다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생각을 강제당한 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네, 이런 생각들은 저를 아주 힘들게 합니다. 제가 걱정을 하고 싶어서 하는 걸까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 뇌는 그 걱정의 인과관계에서 명확하게 원인을 제공하고는 있습니다.

환상통 

이게 계속되면 너무 많은 질문들로 인해 제 뇌가 흘러 넘칠 정도로 가득찹니다. 처음에 분명 무슨 질문을 했었는지조차 파악이 안 될 정도로 심각해지면 슬슬 제가 무념무상이라고 부르는 단계를 톡, 톡 건드립니다.

그러다가 그 단계가 예고없이 와르륵 찾아옵니다. 의식이 몽롱해지면서 제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 모두가 멈추면서 제 주변의 세상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조금 전까지 일방적으로 당하던 걱정은 어느샌가 저편으로 휙 날아가 있고, 잠깐동안 모든 것을 일시정지를 해둔 느낌입니다.

몽롱함에 취해있다가 문득 내 손을 쳐다봅니다. '아, 내가 시각이 있었구나'를 불현듯 깨닫습니다. 어느정도 정신을 차려 눈앞을 보면 내 눈앞에 있는 것이 진짜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들면서, 모든 물체를 객관적인 제 3자의 시점으로 보는 것 같은 환상에 빠지게 됩니다. 심지어 제 몸조차도 말입니다.

환상통 

이 환상은 이내 곧 사라집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예고없이 반드시 일어나고, 그런 후에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서 다시 천근만근 마음이 무거워지는, 그런 현상을 통틀어서 저는 '환상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후에 자연스레, 괜스레 이러한 생각들은 '다른 사람들도 그러겠지?'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려고 노력합니다. '나만 생각하는 문제는 아니니까 말이지'라던가 말입니다."

"저번보다는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네요."

"사실 합리화의 과정 중에 항상 양날의 검과 같이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어휘 선택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일 유사한 어휘로 골라 보자면, 현대 사회에서 나만의 색깔을 가져서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욕망과 군중 심리에 묻어가며 안정감을 찾으려고 하는 욕망 사이에서 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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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 

"아까 전까지는 군중 심리만 이야기하셨지요?"

"저도 참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도 다 이런 생각을 하겠거니 하면서도, 결코 이게 남들이 하지 않고 나만 무언가 특별하여 이럴 수도 있다고 실낱같은 사고(희망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를 동시에 하는거지요. 아이러니합니다."

"사람은 항상 같은 모습만을 가질 수 없고, 이중적이기도 하지요."

"또, 이런저런 말을 주워 담으면서 이 '환상통'은 저만 경험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누구나 다 겪는 흔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세대만의 것인지 문득 궁금해지는 겁니다. 물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새로운 세대가 성인으로 올라오거나 하면 어느 정도 보일 수는 있겠지요. 제가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답이 궁금해지네요. 시간이 꽤 늦었습니다. 오늘 상담은 여기까지 합시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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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m.kr (즘)

적당히 눈치껏 아무 말을 합시다.